바흐의 삶은 우리가 아는 그의 음악만큼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바흐의 삶에 대해 간결하지만 담담하게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가문과 출생지역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열살의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그 나이부터 제밥벌이를 위해 나서야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에 대해 일체의 감상을 배제한 채 그저 묵묵히 서술해가고 있습니다.
아이제나흐-오르트루프-뤼네부르크-아른슈타트-뮐하우젠-바이마르-쾨텐-라이프치히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여러 면에서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리라는 것이 책의 행간에 많이 묻어납니다. 좀 더 상세하게 그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들과는 달리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묘사가 생략된 부분이 많아 마치 만화를 보듯 한컷의 장면을 보며 다른 부분들을 상상속에 떠올리게 만들어줍니다. 두번째 읽으면서 비로소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바흐가 살아가면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직장을 바꾸는 결정이 급여 차이라든가 바흐를 고용한 권력자의 변화라든가 하는 식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그가 만들어낸 "천상의 선율"이 담긴 음악에 경의를 표하게 해줍니다.
다만 워낙 짧은 분량에 방대한 내용을 담아내다 보니, 바흐 입문자에게 권할 수 있는 친절한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바흐의 삶이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 그 전체를 한번 요약적으로 들여다보기에 적당합니다. 시공 디스커버리 시리즈에 포함된 음악가 관련 책 중에서는 베르디와 더불어 가장 내용이 좋습니다. 번역도 읽는 것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요사이, 어쩐지 바흐의 음악이 듣고 싶은 시절이 오랫만에 다시 돌아온 듯합니다. 삶이 주는 무게가 큰 만큼 음악이 주는 위로 또한 큰 것이 삶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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