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이 쓴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은 한 국가 안의 희소가치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너무나도 많이 집중됨에 따라 생기는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훑어본 책으로 읽힌다.

 저자의 돋보기로 들여다 본 오늘날의 지방은 어느 하나 곪지 않은 곳이 없다.

 유년시절과 고교학창시절까지 대부분 지방에서 보냈던 나 같은 순 지방 촌년(?!) 출신에게 지방의 정치, 행정, 교육, 언론, 문화 등에 메스를 들이대는 그의 글들이 좀더 맘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꼭 자기 관련일과 이익에 민감한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특히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라면 서울에 모든 것이 몰려 있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도시구조에 기이함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중앙행정기능의 100%, 경제기능의 76.1%, 정보기능의 93.6%, 국제 기능의 92.7%, 공공기관의90%, 금융기관 대출의 64%가 서울에 몰려 있다.(2002년 기준) 더군다나 국토면적의 12% 불과한 수도권에 48.6%의 인구가 살고 있다.(2007년 기준)

 저자가 툭툭 내던지는 처방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방안까지 매우 다양하다. 전문가가 내 놓은 아이디어나 정책에 대해서 내가 알면 뭘 알겠냐마는, ‘SKY 대학의 정원을 줄여서 소수정예화 하자’나 ‘돈되는 지역문화를 만들자’, 혹은 ‘학연 지연 등의 패거리 문화를 공익을 위해 활용하자’와 같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답안들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듯, 이 사람이 만든 도시의 욕심도 끝이 없는 법이라 기존의 잘못된 ‘경로’를 바루는 일이 쉽게 일어날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문제나 부조리를 올바르게 고치는 첫 단추는 당사자나 피해자가 상황과 해법을 제대로 아는 데 있다. 서울 사람들 보다, 저자의 표현의 빌리자면 ‘당해도 싼’ 지방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 봤으면 하는 책이다.

 아무튼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한양 천도를 한 이래, 하나의 성을 가진 가장 오래된 왕조 국가에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 다시 기적적인 산업화와 근대화를 일궈낸 나라로, 그리고 IT 전자 기술을 뽐내는 첨단기술국가로의 때때옷을 바꿔 입을 때 마다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서울에 연고가 있든 없든, 서울이라는 도시를 선망하든 아니면 기피하든, 인제 서울이라는 도시를 빼놓고선 한국이라는 나라를 온전히 그려낼 수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서는 먼저 서울이라는 도시를 들여다 봐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전우용이 쓴 「서울은 깊다」라는 책은 어제와 오늘날의 서울을 이해하는 데에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고급스러운 의미와 상위의 가치값을 지니는 단어들이 흔희 한자어나 외래어로 되어 있는 관습에 비춰 볼 때 한국의 수도명이 순 우리말로 되어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명이 어떻게 유래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 하는 이 책은 여러 개의 주제어로 이뤄진 글들을 한 곳에 묶어 놓은 책이다.

 저자의 펜끝은 덕수궁이나 압구정 같은 문화 유적지에도 닿아 있고, 예인藝人이나 무당, 물장수 같은 조선시대 하층민의 삶에도 닿아 있고, 근대적 도시의 성장과 시간 개념의 정착에 따라 변화하는 서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가 닿아 있다.

 이 책은 얼핏 보기에 역사책으로 보기에 또 서점에서 그렇게 분류되어 팔리고 있지만 단순 역사책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 주로 조선 후기부터 지금까지의 서울의 풍경을 담고 있는 그 글들에는 도시공학, 경제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의 다양한 시각들이 버무려져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한국사를 공부해왔고 서울의 여러 역사 문화 사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같이 일했던 젊은 학자들로부터 역사학 둘레 너머의 다양한 안목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주제의 글들을 읽더라도 참신하고 재밌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사실이라는 씨줄과 여러 분야의 지식을 날줄로 삼아 길쌈질 하는 그의 글솜씨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 중에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내가 지금 통근길로 다니고 보신각 주변 사거리와 청량리 사이의 교통사史를 다룬 「종로, 전차」다. 서울 한 복판인 종로를 관통하여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전차가 놓이게 된 것과 고종이 홍릉으로 행차를 나가는 것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홍릉은 명성황후의 묘이고 고종이 죽기 전까지 청량리에 있었다.). 명성황후가 죽고 난 다음 굳이 계비繼妃를 들이지 않고 청량리까지의 능행陵幸을 계속 감행한 데에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 잊지 못하는 낭만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이 책은 언론매체의 평을 보아도 그렇고 이 책을 읽은 지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봐도 최근에 나온 역사서적 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책으로 보이지만, 마냥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노인들로부터 흔히 듣는) ‘요즘 젊은 것들은 말야.’ 같은 투정이 더러 보인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등장에 의해 모든 게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문화마저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것, 그리고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사라져버리는 데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들 말이다.(그래서 옛날이 더 낫다는 말은 아니죠?). 그리고 몇 개의 긴 글들은 서울의 지리적 지식도 역사적 지식도 짧은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 어렵고 조금 지루하다.

 「서울은 깊다」의 특별히 눈에 띄는 장점은 다른 역사책과는 달리 평민들과 서민들의 생활사를 많이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 교체와 전쟁과 제도의 변화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거시적으로 읽어 내고 그에 따른 사회 문화의 변화된 양상들을 따져 보는 다른 일반적인 역사책과는 색깔이 많이 다르다.

 가급적 그동안 우리 역사학이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다루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청계천 밑의 거지들의 삶과, 4대문 안에 주거하던 사람들의 똥물의 처리 방법, 최초의 상설 시장인 남대문 시장이 생겨난 과정, 물장수가 우물물을 팔다가 수도시설이 도입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이권 다툼 같은 다른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을수백 컷의 사진과 함께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저자의 풍부한 추리력과 진지한 성찰이 곁들여진 장면들이기도 하고 과거에 궂긴 역사가 아닌 저자에 손에 의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 이어오고 있는 생활장면이기도 하다.

 서울은 600백년 넘게 수도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도시다. 그만큼 도시가 담아내는 문화와 풍속과 역사의 밀도는 촘촘하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서울은 깊다‘. 그리고 서울에 천착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일해 온 저자의 서울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지식도 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