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창 밖이 소란스러워서 무슨 일인가 창문을 열고 내다봤습니다.
창문을 열자마자 방안으로 더 큰 소리들이 쏟아져 들어왔는데요.
조금 떨어진 큰 길가, 도로 양 옆으로 나란히 줄지어 선 가로수들에 가지치기를
하는 소리였어요.
가을에 들어서서 나무들의 생장이 느려졌을 때 시작되는 가지치기.
지난 여름 지나치게 뻗어나간 가지들을 잘라내서 양분을 공급하기 힘든 겨울을
나는데 도움을 주고
내년 봄, 더 건강한 나무로 자랄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이죠.
더 나은 삶을 위해 제몸의 가지들을 쳐내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내 삶에도 가끔씩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순간순간 필요에 의해, 호기심때문에, 욕심때문에, 사람사이의 관계때문에,
너무 복잡해져버린 내 삶의 가지들..
어느 순간 너무 가지가 많은 나무가 된 나를 돌아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내 삶의 가지치기를 시작해봐야겠다 마음먹습니다.
이기철 시인의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입니다.
흔들리면서 힘들게 걸어온 하루를 아무일 없었다는 듯 모른 척 맞아주는
소탈함이 고맙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말없이 우리를 품어주는 자연처럼 마음을 쉴 수 있는 사람들 곁에서 편안
한 가을 주말 누리셨으면 합니다.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이기철
햇빛과 그늘 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
일찍 저무는 날일수록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손 헤도 별은 내려오지 않고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는 나무들만 내 곁에 서 있다
가꾼 삶이 진흙이 되기에는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다
매만져 고통이 반짝이는 날은
손수건만한 꿈을 헹구어 햇빛에 널고
덕석 편 자리만큼 희망도 펴놓는다
바람 부는 날은 내 하루도 숨가빠
꿈 혼자 나부끼는 이 쓸쓸함
풀뿌리가 다칠까 봐 흙도 골라 딛는
이 고요함
어느 날 내 눈물 따뜻해지는 날 오면
나는 내 일생 써온 말씨로 편지를 쓰고
이름 부르면 어디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릴 사람
만나러 가리라
써도써도 미진한 시처럼
가도가도 닿지 못한 햇볕 같은 그리움
풀잎만이 꿈의 빛깔임을 깨닫는 저녁
산그늘에 고요히 마음 베인다
조회 : 2,6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