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엄니 이순덕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없는 집 살림살이 울아부지한테 시집온 울엄니
스무살 어여쁜 나이에 울큰형님
스물네살 아름다운 나이에 울큰누나
스물일곱살 열정적인 나이에 울작은누나
서른살 그리운 나이에 울작은형
서른세살 아픈 나이에 애물단지 셋째아들인 저
서른여섯 어여쁘고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그립고 아픈 나이에 울막내 여동생을 낳아주신 울엄니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서른세살 아픈 나이에 애물단지인 저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유복자인 울아부지는 당신의 엄마와의 이별을 서러워하며 삼년동안 돌아가신 할머니 영위를 모셔놓고 아파하는 사이, 젖을 물려도 먹지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며칠째 울어대는 애물단지를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울아부지가 애물단지를 마당으로 던졌는데 더 목 놓아 우는 애물단지가 불쌍해서 마루를 뛰어 내려가 눈물을 흘리며 안는데, 떠억 벌어진 입천장이 뻘겋게 허물어져 있어서 말 못하는 애물단지를 치료하고 이렇게 키웠습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서른여섯 어여쁘고 아름답고 열정적이고 그립고 아픈 나이에 울막내 여동생을 낳고 얼마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고 이생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울엄니를 울아부지가 보내기 싫어 울엄니 떨어지지 않게 지게에 새끼줄로 꽁꽁 묶고 새벽별빛을 따라 오리 길을 내달려 기차를 타고 두정거장인 춘양역에 내려 용하다는 점쟁이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들어 울엄니를 차마 눈 못 감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엄마 대신 열두살 귀엽고 아름다운 울큰누나를 가슴에 묻어야했습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그렇게 아픔과 아픔이 징검다리마냥 서럽게 엮어지는 세월 속에 울엄니 울아부지 피땀어린 땅이 한 둘 마련이 되고, 이제는 걱정없이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 싶은 쉰넷 화려한 나이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울아부지를 가슴에 묻고 이십팔년, 울엄니 홀로 우리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환갑 무렵에 새아부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호통을 치시면서 야단하셨던 울엄니, 농사 조금 짓고 놀러 다니면서 재미지게 사시라고 했더니 ‘손 발 움직일 때까지는 느그들한테 쌀포대는 보내야제’ 하시면서 봄여름가을겨울 시시때때 울오남매한테 택배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이천십이년 삼월 이십일일, 울엄니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울큰형님 전화를 받고 송정리행 막차 기차를 타고 병원에 가니 새벽 네시 무렵, 중환자실이라고 해서 염려하고 들여다 본 울엄니의 모습은 의외로 평온해 보이고 숨소리도 고왔습니다. 떨리던 가슴을 쓸어안고 울엄니 곁에 앉아 아침을 맞이하니 생각하지도 않은 애물단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셨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기력회복을 위한 입원생활이 시작되었고 울엄니는 원기회복보다는 나날이 드시는 것이 힘겨워지고 떠 드리는 숟가락을 손사래를 치며 물리는 끼니가 많아져 어느새 힘겨워하시면서 스무날이 지났고 혼자 걷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살아생전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싫어하셨고 심지어는 울오남매한테도 조차 짐이 되는 것을 싫어하셨던 울엄니가 간병인과 울큰형수님, 울작은누나, 울작은누나 딸래미, 울막내 여동생한테 기저귀를 갈게 하는 것을 무척이나 창피해하셨습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이러다 울엄니 고향 못가시고 떠나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금요일과 월요일 이틀 연가를 내고 집으로 모시고 가서 마흔 아홉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엄마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순간, 울엄니 똥냄새가 어찌나 고소하던지, 영원히 그 맛난 냄새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향 집에서 그렇게 보신을 하고 좀 활력이 넘친 모습으로 병원으로 다시 모시려고 했는데 울엄니 나흘 동안 여전히 드시지 못하고 밤에 헛소리까지 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시간이 서럽게 흘러갔습니다.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울엄니...‘얼매나 더 아퍼야 죽는다냐?’, ‘엄니, 그런 말씀 마셔. 왜 그래. 아직 아녀. 엄니, 엄니가 우리 여섯 아니 다섯을 낳고, 작년에 내가 수술해 드린 것이 아까운께 딱 오년만 더 사셔. 우리들 낳고 똥기저귀 일 년이상 갈았을 것잉께 큰아들이 일년, 누나가 일년, 작은 아들이 일년, 막둥이 아들이 일년, 우리 막내가 일년, 이렇게 엄니 모실랑께 딱 오년만 더 사셔. 잉!’, ‘먼 말을 그렇게 헌다냐. 내가 느그들한테 그러면 내가 맴이 편허겄냐? 잠자다가 잠자대끼 죽었으면 좋겄다.’, ‘엄니, 안돼, 절대 안돼, 나 엄니 그렇게 돌아가시면 엄니 미워헐것이여. 절대 안된께 자식들 다 보게허고 가시드라도 가셔. 글고 아직은 때가 아니랑께.’ 애걸하니 눈물이 가슴을 타고 내립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어찌할 수 없이 다시 올라와 매일 매일 전화를 드리고 매주 주말에 병원을 찾아들었는데 왜 여태 살면서 그렇게 못해드렸는지, 왜 바쁜 울엄니를 위해 작은 손이라도 도와드리려 이렇게 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서러운 시간과 나날이 전화 목소리에 힘이 없어져가는 울엄니의 애달픈 시간이 달음질칩니다. 오월 육일 일요일, 오랜만에 많은 가족들이 모이고 울엄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병원 뜰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것이 울엄니 살아생전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환하게 웃어주신 울엄니를 사진속에 담아 ‘엄니, 다음 주 일요일에 또 올텡께 진지 잘 잡수고 기운차리셔잉!’ 약속을 하고 올라와 전화를 하니 여전히 아무것도 잡수지 못하고 토하시기만 한다는 울작은누나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어버이날 아내가 아침밥상을 차려놓고 ‘시간이 되면 엄마한테 가보시면 안될까요? 밤새 꿈자리가 사나워서요.’ 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사무실에 출근하여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연가를 내고 울엄니를 고향 집으로 모시고 내려갔습니다. 울엄니랑 병원에서 하룻밤을 잘 때면 꼭 침대 한 켠으로 애써 몸을 옮기시며 손바닥으로 침대바닥을 치면서 같이 자자시던 울엄니, 애물단지가 울엄니 몸을 만지면 울엄니도 애물단지 머리, 손, 어깨, 가슴, 배를 만져주시던 울엄니, 꿈에 울아부지 보셨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신 울엄니가 드시는 것이 없으면서 자꾸 구역질을 하십니다. 그리고 뜨겁다면서 얇디얇은 셔츠를 벗겨 달라십니다. ‘여마리요~, 여마리요~. 여마리요~’ 손짓하며 울아부지를 부르기도 하고, ‘오빠~, 오빠~’ 손짓하며 허망한 눈길이 쫓아가는데 가슴이 덜컥, 무섭게 떨어집니다.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동이터서 햇살이 방안에 들어와서 울엄니 따사로운 햇살기운 받고 기운차리시라고 자리를 옮겨드리니 두 팔을 쳐들고 ‘옷 입혀주라’, 반가운 마음에 간밤에 벗겨드렸던 옷을 입혀드렸는데 또 ‘옷 입혀줘야’, ‘엄니. 옷 입었어. 봐.’ 해도 ‘옷 입혀주라’시며 햇살이 드는 마당을 응시하더니 그대로....그대로....그대로...가슴이 사그라지셨습니다. 왜 그리 허망하게 가시는지...왜 그리 급하게 가시는지...통곡하고...통곡하고...통곡하고 온 몸을 애물단지 몸으로 감싸고, 어루만지고 해도 차갑게 변해가는 울엄니를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울큰형님부터 울막내 여동생한테 전화를 하고나니 아직 울엄니 젖가슴은 따스한데 벌써 목이 뻣뻣해지셔서 몸을 반듯하게 해 드리고 그 곁에 누워 다시 울엄니를 품에 안아봅니다. 울엄니 몸 차가워지지 말라고 애원하면서....그리고 40여분이 지나 울엄니를 모시고 갈 병원차가 마당으로 들어와서....
그런 울엄니와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오년만 더 살아달라는 애물단지의 간곡한 청을 오십일로 알아들으셨는지 사십구일만에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울오남매와 이별을 하셨습니다. 유언처럼 남기신 ‘느그 큰형을 아부지로, 형수를 엄니로 생각허고 살고, 우째든지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고, 우리 강아지들 잘 키우라’고 하셨던 울엄니 뜻을 따르면서 잘 살아가야 합니다. 매년 어버이 날이면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부르면서 울아부지 생각에 눈물 흘렸는데 이제는 울엄니까지 가시니 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엄마...
다음 세상에서도 울엄니 되주셔야해.....
기다려야해...
엄마...
잘 가셔....
울엄니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시는 길
먼 길 마다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가시는 길 꽃길 뿌려주시고
슬픔에 젖은 저희 가족들에게 큰 위로를 해 주신 감사한 님들 덕분에
울엄니 고이 모셨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감사한 님들의 위로와 격려를 기억하며
모든 님들의 가정과 삶의 터에 평강이 깃들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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